선교소식

탄자니아 - 윤봉석/순희 선교사
선교팀   2015-02-13 07:18:38 PM
언약의 편지 2015-2 (첨부파일에는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평안 하신지요?
계신 곳은 기온이 어떤지요?
이곳은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심합니다.
밤에는 열을 받은 벽으로 방이 너무 더워서 거실에 자리를 펴고 모기장을 치고 자기도 합니다.
넓고 자유스러워서인지 주성이는 그렇게 거실에서 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희는 한 두 번씩 말라리아에 걸려서 약을 먹었는데 한번은 약을 먹어도 그 다음주에 더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수치가 배로 올라가서 세 번에 걸쳐 혈관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종류의 말라리아약을 먹었더니 나았습니다.  이 땅의 말라리아도 새로운 변종들이 생겨서 기존의 약으로는 낫지 않기도 합니다.  저희는 어떻게 해서라도 주사도 맞고 약도 새로 먹지만 가난한 시골 사람들은 대책 없이 죽기도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현재 저희 사역을 유지시켜주는 큰 힘은 포크레인입니다.
저희 일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일도 해 주어 그것으로 거의 운영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수지와 물탱크를 통한 물 확보로 인하여 농작물을 심어 농장 운영이라도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토마토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어린 묘를 밭에다 심고 돌보느라 저는 새벽 6시에 준비하여 농장으로 갔다가 저녘 7시경에야 시내의 집으로 돌아 옵니다.   한국은 아주 일번적인 관수인 점적 관수가 이들에게 아주 현대적인관수이고 바닥에 비닐을 깔고 하는 농업을 본적이 없는 이들과 한낮의 바람은 열풍처럼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 하는 것은 보통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옮겨 심은 토마토 묘목들이 타 죽기 때문에 긴장 속에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제대로 따라 주지 못한 농장 식구들이 밉다 못해 너무 실망스러워 그만 어떤 끈을 놓고 싶은 마음이 벼랑에 서는 듯합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며 미케세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을 구입해 마시며 스스로 다시 마음을 추스리기도 합니다.  
  
가난해도 병이 걸려도 어디 의지 할 데가 없는 이 백성들이 이 땅을 의지하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을 위해 저희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 하셨을텐데….
하지만 저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이 너무 크고 벌써 60을 바라보는 나이도 무시하지 못하도록 연약함이 멈칫거리게 합니다.  이 일이 중요하고 아프리카에 이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외쳐도 듣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딸에게라도 이 부르심을 심어 주려고 해 보지만 한편 이 길이 평탄치를 않은 길이고, 가난과 고생의 길이고, 많은 어려움이 있는 일이라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가면 분명 위로를 주실 것이라 믿기에 가장 귀한 일이라 생각 합니다. 
 
저희가 판 저수지를 보고 마을 주변의 사람들도 만들어 달라고 하여 두 어 개 만들어 주었습니다.
건기에는 물을 볼 수 없는데도 작년에 저희 저수지에서는 다음 번 비가 올 때까지 물이 있어서 증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리마 비타투 교회의 작목반이 쓸 수 있도록 교회주변에도 조그맣게 저수지를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디피 어린이들은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작년까지는 우리 시디피센터에서 오전에 정규 공부를 하고 오후에 방과후 학교로 진행했는데
올해부터는 학교의 본 건물로 옮겨 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4학년에 국가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본다고 하여 학교 선생님들이 본관에 있는 것이 가르치기에 유리하다고 하여 옮겼습니다.
우리 시디피 센터에서는 유치원, 1학년, 2학년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정 임식 선교사가 개학을 하기 전에 벽에 페인트 칠도 다시 하고 여러 가지 챠트들로 교실들도 꾸며서 깨끗이 단장한 시디피센터에 몇 일전 장학사가 시찰을 나왔다가 훌륭하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나라의 열악한 학교 건물에 비해 조금 깨끗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는 3월 16일날 한국을 나가려고 합니다.
4월 11일에 주광이와 김은선 선교사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광이는 이스라엘 히브리 농업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2년간 공익근무를 했는데 5월에 마칠 예정입니다.  김은선 선교사는 2011년 8월에 저희와 함께 이곳에 와서 시디피 어린이 사역의 기초를 다지며 2년간 열심히 사역한 후 돌아가 한국에서 현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시디피 학부모들은 김은선 선교사가 언제 돌아 오냐고 묻습니다.  말 안 듣는 개구장이에게 김은선 선교사에게 일르겠다고 하면 자세를 고치기도 합니다.  두세 시간씩 걸어서 발이 아프도록 학생들과 함께 가정 방문을 다니며 몸으로 사랑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루게 될 가정을 통해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어둠에 있는 백성들이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월 29일에는 제가 목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평신도 선교사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사역해 왔습니다만 아프리카 선교 방향을 위한 책을 언젠가 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좀 더 신학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 너무나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8살부터 접했던 아프리카!  아직도 어둠과 혼란 속에 있는 이 땅의 선교를 위한 방향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방향제시를 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허락하신 분도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제가 주님의 손에 붙들림 받아 쓰임 받는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 부탁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위한 기도와 사랑에 감사 드리며
 
주님의 은혜안에서 늘 강건하시고 평안 하시기 바랍니다.
 
선교사 윤 봉석, 서 순희, (윤 주영, 윤 주광, 윤 주성) 정 임식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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